■ 출판사 서평
중국이 봉건사회의 갇힌 사회에서 개방 정책을 펴면서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중국의 최초이면서 최고의 대학인 북경대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을 국내외의 온갖 자료를 치밀히 고증하여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은 당시 개혁파와 수구파들이 번갈아 황실에 올린 상주문이 소상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초기의 어설픈 단계에서부터 나중 본궤도에 이를 때까지의 대학교의 각종 규율, 가령 기숙사에는 어떤 자격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으며, 식사 시에는 어떤 예절을 지켜야 하고, 면회는 어느 때에만 허용되는 등 세세한 것까지, 또 입학시험, 기말고사 등의 시험문제까지도 자세히 수록하였다. 북경대학교의 탄생은 한 대학의 탄생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국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근대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바로 새 중국의 탄생이었다. 이 책은 그 큰 세계를 보여 주고, 그로써 우리로 하여금 중국을 좀더 깊게 알게 해 준다.
■ 저자소개
지은이
하오핑(郝平) 1959년 중국 산동성(山東省) 출생. 1982년 베이징대학교 역사학과 졸업. 1991~1995년 미국 하와이대학교 동서양연구센터 석사과정. 1999년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 박사학위. 2004년 베이징대학교 정교수. 2001~2005년 베이징대학교 부총장. 2005~2009년 베이징외국어대학교 총장. 2009~2016년 중국 교육부 부장관. 2013~2015년 유네스코 총회 의장. 2016년~현재 베이징대학교 사무위원회 주임. 교육재단 이사장. 호주 라트로브대학교, 일본 와세다대학교,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 저서로『손중산의 혁명 및 미국』, 『북경대학창판사실고원(北京大學創辦史實考源)』, 『안타까운 이별: john leighton stuart와 중국』(러시아어, 영어로 번역 출판) 등이 있다.
옮긴이
진염평(陳艶平) 1974년 중국 길림성 출생. 1997년에 중국 연변대학교 조선어학과 졸업. 1999~2002년 중국 연변대학교 석사과정. 2004~2008년 중국 연변대학교 박사학위. 2012~2014년 중국 상하이외국어대학(포스닥). 1997년~현재 대련외국어대학교 한국어대학 교수. 대학원 지도교수. 학술지 <동북아외국어연구> 부주편. 국가급 프로젝트, 성급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중국 요녕성 대학교 우수인재 양성프로젝트에 당선. 저서로『한국어 연결어미의 입체적 연구』, 『한국어 텍스트화용 연구』, 『다문화비교화용 시각에서 본 공손언어연구』, 『한국어 실용 관용어 보전』 등이 있고, 역서로 이익섭 저 『국어학개설』(현재 중국 여러 대학교의 대학원 지정 교재로 선정)이 있다.
■ 책속에서
청국은 성조(聖祖) 강희(康熙), 세종(世宗) 옹정(雍正), 고종(高宗) 건륭(乾隆)의 3대 왕조에 걸친 130여 년의 태평성세 이후 인종(仁宗) 가경(嘉慶), 선종(宣宗) 도광(道光) 시대에 이르러 이미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다. 청국 내부의 극심한 부정부패 및 공공연한 뇌물수수와 더불어 당시 추진하던 쇄국정책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한편 영국, 프랑스, 미국 및 여러 국가들은 오랜 동안의 중세 암흑기를 거친 후 앞다투어 자본주의의 발전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발전단계상에 있는 자본주의의 특징은 원자재 생산지와 상품시장을 약탈하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방식의 자본주의의 도전에 대처할 수 없었던 중국의 2천여 년 이어져 온 봉건문명은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에서 영국 상인이 아편무역을 최초로 시작한 것은 이미 18세기 초부터였다. 그 당시 영국은 중국으로 매년 200상자 이상의 아편을 수출하고 있었다. 1780년부터 1816년(건륭 45년~가경 21년)까지 매년 수출량은 4, 5천 상자에 달했고 1816년부터 1834년 사이에 이 숫자는 놀랍게도 21,785상자에 이르렀다. 이후 영국의 중국에 대한 아편의 수출량은 폭리를 취하기 위하여 급격히 증가해서 1837년에 39,000상자, 1838년에는 40,200상자를 수출하였다. 그 당시 영국정부는 소득총액의 1/10을 중국에 대한 아편 판매에서 벌어들였다.
■ 머리말
재판 서문
최근 한동안 몇 개 대학들이 잇달아 창립 100주년을 경축하였다. 중국의 대학들은 평범하지 않은 100년의 역사를 거쳐 왔다. 그러나 근대 중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대학은 어느 대학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2008년에 북경대학 110주년 개교기념일에 즈음하여 북경대학 출판사는 『북경대학창판사실고원(北京大學創辦史實考源)』을 재출간하였다. 그 저자로서 나는 북경대학의 창립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들에 대해 독자 여러분이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첫째, 1894년의 중일 갑오전쟁(청일전쟁)은 청국 정부의 북양해군이 전멸하면서 끝이 났고 그 결과로서 중국의 지식인들이 변법운동을 일으키도록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5년에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등은 강학회(强學會)를 설립하여 강연회와 보고회를 개최하고 진보적인 서적들을 출판하였으며 과학 실험기구 등을 구입하여 변법운동을 추진하였다. 보수파의 압제를 받고 나서 강학회는 관서국(官書局)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관서국의 기초 위에서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이 설립되었다. 양계초 선생은 일찍이 강학회가 경사대학당의 전신이며 초기 형태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둘째, 1898년 광서 황제는 천안문 성루 위에서 「명정국시조서(明定國是詔書)」를 공포하고 유신변법(維新變法)을 시작하였다. 경사대학당의 설립은 이 변법운동의 중요한 조치 가운데 하나였다. 양계초가 기초하고 강유위가 심사하여 확정한 후 총리아문이 황제에게 상주한 「경사대학당장정(京師大學堂章程)」은 당시의 개혁사상을 집약해서 반영하였다. 중국 근대 최초의 국립대학인 경사대학당은 또한 국가교육 관리부문의 기능과 역할도 갖고 있었다. 경사대학당의 설립은 중국 근, 현대교육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셋째, 1862년 설립된 경사동문관(京師同文館)은 중국 근대 최초의 다양한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교였다. 이 학교는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을 가르쳤고 또한 천문, 수학, 물리, 의학 등의 학과를 개설하였으며 백여 명의 교수를 초빙하여 약 천여 명의 학생들을 졸업시켜서 청조 정부를 위한 수많은 외교인재들을 양성하였다. 1902년에 이 학교는 경사대학당에 합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사동문관은 경사대학당의 중요한 전신(前身)의 하나이다. 넷째, 국자감(國子監)은 중국의 2천 년 동안 시행되어 온 과거시험제도 아래에서 태학(太學)으로부터 발전되어 내려온 최고학부였다. 국자감은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현대 교육제도가 수립된 1905년에 폐지되었다. 그 관리직능은 경사대학당의 관리직능과 합병되면서 오늘날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가 설립되었으며 국자감의 교육직능은 경사대학당에 편입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경사대학당은 중국의 전통교육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호적(胡適) 선생과 계선림(季羨林) 선생 두 분 모두 일찍이 이 문제에 대하여 상세히 논술한 바 있다. 다섯째, 경사대학당의 영문 이름은 Imperial University이고 이를 직역하면 “제국대학교”가 되며 경사동문관의 영문 이름은 Imperial College이고 이를 직역하면 “제국대학”이 된다. 이 두 개의 이름은 모두 당시에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중요한 지위를 반영하는 것이다. 여섯째, 신해혁명 이후인 1912년 경사대학당은 국립북경대학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이상 여섯 가지 점들에 대하여 독자 여러분이 중국의 근대 대학 역사를 연구할 때 깊은 관심을 갖기를 희망한다.
하오핑(郝平) 2008년 3월 북경 성부(成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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