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이 책에서는 강릉지방 사회변화와 강릉단오제의 변화를 연동시켜 이해하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강릉단오제는 지방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축제이고, 축제의 중심에는 성황제가 있다. 이러한 보편적 구조에서 지역성으로 성황제의 신체인식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신체인식은 지방의 사회안정과 발전을 모색하려는 주도세력의 성향과 무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시각에서 주도세력의 성향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변화가 강릉단오제에 어떻게 투영되는가를 살피고자 하였다. 이 책이 강릉단오제를 이해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여전히 강릉단오제의 중심제의가 산신제인지? 성황제인지? 혼동이 야기되곤 한다. 이 점은 강릉단오제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사안이기에 혼동이 불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저자소개
이규대
강릉교육대학과 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논저 「강릉단오제의 형성과 전개」 『영동지방 향토사연구 자료총서』(공저) 『조선후기 향약연구』(공저) 『강릉단오제의 전승과 비전(공저)』 『조선시기 향촌사회 연구』 등
■ 책속에서
서론(13~16p)
강릉단오제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강릉지방의 각종 읍지와 문집에서 단오제가 언급되고 있으며,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기까지 중앙대학교 임동권 교수의 정밀한 현지 탐방을 통해 이루어진 연구 성과가 있다. 그 후로 많은 민속학 전공자들에 의해 강릉단오제의 일정과 제의구조, 무악과 굿, 영신행렬, 관노가면극과 민속놀이, 음식문화 등 제의와 축제적 양상들이 구체적으로 규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기·예능 보유자들이 지정되어 그 전승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으며, 200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인류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이러한 성과는 강릉지방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단오축제가 연행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더 촉진되었다. 단오축제의 연행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시기에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일제의 위정자들에 의해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읍성이 철거되고 읍치 사회가 해체되었으며, 치제 장소였던 대성황사가 철폐되고 저들의 신사가 건립되는 상황에서 단오제의 연행은 단속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단오축제에 몸담았던 기·예능 보유자들의 체험적 담론은 단오제가 재현되고 그 연구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이에 힘입어 단오제의 재현은 원활하게 수행되었고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는 그 동력이 되었다. 다만 이러한 성과는 단오축제의 성공적 수행에 초점이 두어지면서 역사적 맥락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는 한계가 노정되었다. 단오제의 역사적 맥락, 그것은 단오제의 전승문제이다. 단오제 전승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오제의 사회사·지방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고, 나아가 단오제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규명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한계는 원천적으로 자료의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대마다 단편적인 자료가 전해지고 있지만, 단오제의 실체와 전승양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한 형편이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실록 자료에서 파악되는 조선 초기 성황제 운영 정책을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수용한 신왕조의 성황제 정책은 성황제를 통해 지방사회에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려는 성향을 띠고 있었음을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에 직면하여 각 지방의 성황제가 변모하는 양상과 아울러 강릉단오제의 변모 양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강릉지방에서 1995년에 발견된 미타계 자료를 활용하였다. 이 자료는 1681년(숙종 7)의 향도계의 실상을 담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조선 후기 성황제가 활성화되는 계기와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특히 단오제와 미타계의 주도세력이 호장과 안일호장을 비롯한 향리세력으로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였고, 이에 착안하여 미타계에서 파악되는 향리세력의 성향이 조선 후기 강릉단오제에 투영되고 있음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17세기 후반의 미타계 자료에서 표방하고 있는 미타존불도를 고려시대의 향도계로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강릉지방 굴산사·지장선원을 비롯한 굴산문의 선승 범일·개청과 미타존불도의 단월관계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고려시대 관행이 선초 이념정책에 따라 침잠되었다가 조선 후기 미타계가 중창되면서 되살아나는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동향은 미타계의 주도세력인 호장과 안일호장을 중심으로 하는 향리세력에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음을 규명하고자 하였고, 이로부터 향리세력이 갖는 이러한 성향과 동향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제 이러한 시각에서 정리된 내용을 순차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상원사와 삼화사의 국행수륙재’와 ‘강릉 금란반월회 계회도로 본 차문화’에서는 조선 초기 강릉지방 불교의 존립양태와 이 지방 사림들의 성리학에 경도되어 가는 성향의 변화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른바 숭유억불 정책으로 야기되는 지방사회 변화상을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이것은 전승제의로서 강릉단오제의 변화가 초래되는 동인으로서 주목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강릉지방의 향도회, 미타계 자료를 주목하였다. ‘강릉 미타계 주도세력의 성향’에서 미타계의 주도세력으로 호장과 안일호장을 비롯한 향리집단을 주목하고 그 조직과 운영 및 성향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명주 굴산문의 향도회, 미타존불도’에서는 자료상에 투영되는 고려시대의 향도회 모습을 검증해 보고자 하였다. 이로써 강릉단오제 주재집단의 성향과 제의의 신체인식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어서 ‘강릉대도호부 읍치의 구조와 특성’을 통해 읍치에 배치된 관아와 각종 관아에 배속되는 인적자원 및 읍성 마을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읍치의 호장을 비롯한 중간계층의 존재양태와 역할을 이해하고, 나아가 강릉단오제의 읍치의 제의로서 특성을 이해하는데 의미를 두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명주호족과 그 후예들의 대관령국사성황제’에서는 대관령이 갖는 제일 관문으로서의 비중과 명주호족의 사회적 입지의 재생산이라는 시각에서 성황제가 연례적으로 치제되는 강한 지속성을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아울러 이러한 성황제를 지방사회의 관행과 고례로 인식하면서 그 전승을 자임하고 나선 호장을 위시한 향리세력의 성향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강릉 대관령국사성황제의 형성과 굴절과 재정립’에서는 강릉단오제 중심제의의 변화를 거시적 시각에서 살피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범일국사를 신상으로 하는 제의를 강릉단오제의 원형으로 파악하였고, 조선 전기 국가의 이념정책에 영향을 받으면서 신상이 변모하고 있었고, 다시 조선 후기에 이르러 미타존불도를 인지한 향리세력의 성향이 투영되면서 범일국사를 신체로 하는 강릉단오제가 재정립되고 있음을 살피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마을 공동체의 성장과 마을 성황제’에서는 마을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마을마다 성황제가 설치되어 나가는 실태적 양상을 파악하고, 여기에는 읍치 성황제가 그 전범이 되면서 마을 성황제는 마을의 자립성과 독자성 즉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제의로서 정착되고 있음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끝으로 ‘단오제 문화유적 탐방’에서는 강릉단오제를 문화유적으로 소개하였다. 매년 단오제를 찾는 탐방객들을 위한 배려에서이다.
■ 머리말
책을 내면서
그동안 필자의 강릉단오제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의무감에서 시작된 듯하다. 이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고, 뒤늦게 이곳 대학에 취직하여 생활하게 되면서 생긴 의무감이었다. 그리고 이런 의무감에 앞서 강릉단오제에 대한 내 어린 시절의 정겨운 추억도 그 계기가 된 듯하다. 단오장의 볼거리 먹거리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읍내에 있는 큰집에 내 어머니를 비롯해 대소가들이 모여 하루 이틀을 지내면서 단오장을 구경 다니시던 모습에서 오는 정겨움은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에 보아 온 단오장의 기억 속에 한 단상이 늘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단오장에 운집하는데 유학을 공부하셨던 할아버지는 왜 단오장에 나가지 않으시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 아련한 단상 위에 또 하나 겹쳐지는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이 지방의 역사적 인물로 앞세워지는 많은 학자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연행된 강릉단오제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강릉단오제 자료를 검색하면서 불식되지 않는 의문이었다. 아마도 여기에는 저간의 사정이 있을 듯도 보여 지는데, 그리고 저간의 사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강릉단오제 연구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어련 풋 하게나마 짐작은 될 것도 같은데, 이 해묵은 의문은 내게서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동안의 해묵은 의문은 단오제의 향유층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과제로 내게 돌아 올 것도 같다. 이번에는 강릉지방 사회변화와 강릉단오제의 변화를 연동시켜 이해하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강릉단오제는 지방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축제이고, 축제의 중심에는 성황제가 있다. 이러한 보편적 구조에서 지역성으로 성황제의 신체인식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신체인식은 지방의 사회안정과 발전을 모색하려는 주도세력의 성향과 무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시각에서 주도세력의 성향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변화가 강릉단오제에 어떻게 투영되는가를 살피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중앙의 정치적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지방 주도세력의 성향을 살필 수 있었고, 한편으로 지방사회의 풍속과 관행을 앞세워 서민들의 포용하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를 유지 강화하려는 중간계층의 성향도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사회 변혁기에 보다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부터 강릉단오제가 장기 지속적일 수 있었던 동력을 파악할 수도 있었다. 전승제의가 갖는 복고적·보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격변기 마다 생성되는 새로운 변화를 살피면서 그 발전적·미래지향적 의미도 새겨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향유층의 성향과 동향을 홀시한 듯한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작업에서 미타계 자료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자료의 지평을 넓혔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 자료를 통해 이 지방의 양반세력과 호장을 비롯한 향리세력의 동향과 성향을 살필 수 있었던 점은 매우 다행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이 자료는 강릉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자료를 소개해 준 당시 정항교 관장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이 강릉단오제를 이해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여전히 강릉단오제의 중심제의가 산신제인지? 성황제인지? 혼동이 야기되곤 한다. 이 점은 강릉단오제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사안이기에 혼동이 불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번 출판을 쾌히 응낙해 주신 신구대학교 이숭겸 총장님과 신구문화사 임미영 사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젊은 날 청진동 시절이 내게는 너무도 소중하였다는 말로 거듭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최승복 편집부장을 비롯한 편집부 관계자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집사람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2016년 11월 지변동 연구실에서 이규대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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