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갈등의 시대 - 정조와 19세기' - 보도자료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09-03-04 17:15     조회 : 1926    

▸지은이 : 유봉학(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판형 : 신국판
▸쪽수 : 303쪽
▸가격 : 18,000원
▸ISBN : 978-89-7668-159-1
▸발행일 : 2009년 2월 10일
▸발행처 : 신구문화사


'개혁과 갈등의 시대 - 정조와 19세기'


  정조의 밀찰이 공개된 이후 그간 널리 유포되었던 정조독살설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영원한 제국󰡕을 쓴 인기 소설가와 정조독살설로 여러 권 책을 낸 대중역사서 작가는 여전히 노론 벽파가 정조를 죽임으로써 조선의 자주적 개혁이 단절되고 조선은 망국을 자초하였다고 소리를 높이지만, 역사학계 쪽에서는 저들이 기본적 사료조차 잘못 읽거나 자료의 왜곡, 과장을 일삼는 점을 지적하면서 독살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정조시대 전문가인 유봉학 교수는 일찍이 2001년 󰡔정조대왕의 꿈󰡕이란 책으로 정조의 독살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정조독살설이 대중의 역사인식에 미치는 해독을 경고한 바 있다. 정조의 독살로 자주적 근대화가 좌절되었다는 주장은 식민사관의 19세기 암흑시대론과 주자학망국론에 사로잡혀 일제의 조선 강점 불가피론에 빠지거나 군사독재를 정당화함으로써 대중을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교수의 오랜 연구의 결정체인 이 책은 저들 잘못된 역사인식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비판과 정조시대 개혁의 실상에 대한 구체적 해명을 담고 있다. 정조라는 탕평군주와 그가 등용한 사림청론 출신의 유능한 재상, 민중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관료학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하여 갈등 속에 진행된 정조시대 개혁의 본질을 제시하고, 정조 사후 개혁이 어떤 상황을 맞게 되는지를 천착한 것이다.
  흔히 암흑시대로 설명되는 정조 사후 19세기의 조선에서는 정조시대 개혁을 이끌던 세력 중 일부는 세도가가 되고, 여기에 박지원 등을 계승한 연암일파 지식인과 추사 김정희의 추사일문이 대안세력으로서 등장하여 새로운 시대를 향해 각기 고투하고 있었다. 이들은 19세기 후반 추사의 문인인 흥선대원군 단계에 가면 일시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간 정조시대와 19세기를 단절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았던 데서 벗어나 이제는 계승의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파행적인 세도정치와 삼정문란, 그리고 민란 등으로 19세기가 혼란에 휩싸였다면, 그 속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 각각이 갈등을 벌이며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가운데 조선 전통 질서가 와해된 것이 역사적 실상이었다. 이는 정조시대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난 상황이었으며, 19세기 조선사회 발전의 역동적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식민사관’과 ‘식민지근대화론’에서는 전통시대의 자주적 개혁과 발전을 부정하고 흔히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발전의 기점을 설정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정조시대 이후 19세기까지 역사의 전개를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오늘 우리의 ‘세계화’, ‘선진화’의 지향이 일제강점기를 뛰어넘어 정조시대 이후 역사의 지향성에 맞닿아 있음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해명하였다. 
  그간 유봉학 교수는 영조 정조 시대 역사 연구를 통하여 북벌론에서 북학론으로의 사상적 전환, 전통주자학에서 북학 등 실학사상이 등장하는 과정, 경(서울) 향(지방)의 분기 현상과 경화사족의 역할 등에서 많은 연구 성과를 냈다.(1995년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 1998년 󰡔조선후기 학계와 지식인󰡕) 뿐만 아니라, 수원 화성 연구를 통해 이를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개혁의 시범도시’로 규정하며 여기에 실학자들의 구상이 정책화되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실학의 도시’이기도 함을 논증하였다.(1996년 󰡔꿈의 문화유산, 화성󰡕)
  이러한 연구의 결과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사실들을 밝히고 있다.
  첫째,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를 지지한 정치세력이 ‘우현좌척론’을 명분으로 내건 ‘청론’세력이었으며 정조 8년 이후 이들이 시파와 벽파로 분열하여 갈등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시파와 벽파의 대립을 흑백 선악으로 극단화하고 그 시원을 사도세자가 죽는 영조시대까지 소급시키는 것이 잘못임이 명백해졌다. 이 오류는 식민사관의 당쟁론에 의해 심화되었는데 이 오류를 걷어냄으로써 그간 벽파로 치부되었던 유언호와 이서구의 청론이자 개혁세력으로서의 실제 면모가 분명히 드러났다.
  둘째, 청론 세력의 지원으로 화성신도시 건설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성과를 낳았던 정조의 개혁정치가 집권후반기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정조가 일방적 왕권 강화를 위해 새로운 측근세력을 조성하려 하고 급기야 외척까지 끌어들여 ‘우현좌척론’을 부인하기에 이름으로써 청론은 물론 신료 일반의 지지를 상실하게 되었다.
  셋째, 정조가 화성신도시 건설을 추진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1804년 갑자년에 성년이 되는 왕세자로 하여금 사도세자 추숭사업을 완수하게 하려는 ‘갑자년(1804년)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집권 말기 신료들의 신뢰 상실로 인해 그의 개인적 꿈은 좌절되고 만다.
  넷째, 정조 사후 일시적으로 노론 벽파가 정권을 주도했지만 1806년 ‘병인경화’로 시파가 벽파를 일망타진하고 정조시대의 개혁세력 중 일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일부는 그를 비판하면서 정치를 펴나간다. 그간 정조시대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이 정조 사후 좌절됨으로써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고 외세의 침략을 자초했다는 설명은 식민사관에 근거한 오류였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이 책은 정조시대 개혁과 갈등의 실상,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19세기 정치와 사상 변화의 실상을 구조적으로 해명했다. 19세기 세도정국에서는 정부의 공적 기능이 상실되면서 전통적 지배체제가 와해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많은 변화가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점에 착안하여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 등 관찬사료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개인과 민간의 사료까지 광범위하게 동원하여 교차 검증하는 방법론을 구사했다. 이를 통해 어둠 속에 묻힐 뻔한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조선후기 역사 연구에서 이 책의 기여는 결코 적지 않다고 하겠다.

<지은이 소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현재 한신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교수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저서>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1995, 일지사)
「꿈의 문화유산, 화성」(1996, 신구문화사)
「조선후기 학계와 지식인」(1998, 신구문화사)
「진경시대」 1, 2(공저,1998, 돌베개) 
「정조대왕의 꿈」(2001, 신구문화사)
「한국문화와 역사의식」(2005, 신구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