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법통과 교학전통' 보도자료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10-08-31 15:05     조회 : 2011    

▸도서명 :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법통과 교학전통
▸지은이 : 김용태
▸판  형 : 신국판
▸면  수 : 432면
▸가  격 : 23,000원
▸ISBN : 978-89-7668-173-7
▸발행일 : 2010년 8월 25일
▸발행처 : 신구문화사

■ 지은이 소개

[약력]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문학석사
  도쿄(東京)대학 인도철학불교학과 수사(修士)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문학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주요 논저]
 「조선후기 불교의 심성 인식과 그 사상사적 의미」
 「조선시대 불교의 유불공존 모색과 시대성의 추구」
 「조선후기․근대의 종명과 종조 인식의 역사적 고찰」
 「근대불교학과 일본적 특수성」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전통의 흐름』(공저)
 『조계종사 고중세편』(공저)


■ 책의 특징 및 의의
-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교는 시대와의 공조를 통해 존립과 계승을 모색하였고 한국불교의 유무형적 자산과 그 원형은 조선후기에 형성되었다.
- 조선시대 불교가 억압에 의해 쇠퇴를 거듭하였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되고 상식이 통용된 것은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이조불교(李朝佛敎)』(1929)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연구에서 식민지 유산의 극복과 전통에 대한 재해석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조선시대에 불교가 부재한다거나 긍정적 측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단절적 인식과 선입견은 일반인은 물론 학계에서도 공통의 인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역사학이나 철학, 불교학을 비롯한 관련 분야에서 연구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왔다.
- 이 책은 『이조불교』 이후 80여년 만에 조선시대 불교사 전체를 조망한 첫 개설서로서, 문제제기와 상식의 재고, 자료 발굴과 새로운 사실의 규명, 인식과 관점의 전환 등 일정한 연구사적 의의를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
- 유교에 비해 전통의 지분을 거의 갖지 못했던 불교는 근대 문명개화의 신시대를 맞이하여 탈전통의 급격한 변신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불교계에서 전통시대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나 부채의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며 부정적, 단절적 전통 인식은 자기 정체성과 기원에 대한 무관심과 망각을 초래하였다.
- 그렇지만 그 반대로 전통을 미화하고 포장하려는 유혹 또한 경계되어야 하는데, ‘정체인가 발전인가’하는 근대주의적, 결과론적 평가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상’을 그려내고 전통과 근대 사이의 단절과 괴리를 어떤 방향으로 극복할 것인지의 대안적 모색이 있은 후에야 그 해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부정과 긍정의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하여 연속성의 관점에서 불교의 역사적 실상을 조명하고 전통의 실체를 이해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 조선후기 불교는 임제법통과 화엄교학의 이중구조를 그 ‘정체’로 하며 유교사회에서 시대성을 추구하며 많은 변용을 모색하였다.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모색하는 일은 전통의 재발견과 상식의 재고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이 점에서 조선후기 불교전통이 남긴 많은 유산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우리 앞에 던져주고 있다.


■ 내용 요약

서론에서는 식민지기 이후의 연구사 정리와 함께 통설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입론의 구축을 촉구하였다. 

1부  불교사의 전개와 불교의 존립기반 :
  불교시책, 사원경제, 불교신앙을 통해 폐불 상태를 극복하고 불교가 존립할 수 있었던 요인과 배경, 전개양상 등을 개관하였다. 승군 활동과 노동력 활용의 대가로 승려 자격이 용인되면서 인적자원의 유지와 재생산이 가능하였고, 전법(傳法)을 기준으로 한 인적 계승이 계파와 문파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법통(法統) 정립과 수행 및 교육체계의 정비도 수반되었다. 또 승려의 사적 토지소유가 용인되고 상속이 허용되면서 계회(契會)나 보사청(補寺廳)을 통한 재정운영도 활성화되어 사원경제의 자립이 가능해졌다. 유교사회에서도 불교의 내세관과 추복은 이어졌고, 불교신앙은 내세의 염원과 염불왕생, 민간신앙과의 습합, 국왕과 왕실 등 상층주류의 후원을 통해 지속되었다.

2부  불교 계파와 법통의 성립 :
  양대 계파인 청허계(淸虛系)와 부휴계(浮休系)의 구성과 활동, 지역 범위와 위상을 고찰하였다. 청허계는 4대 문파로 나뉘었는데 최대 문파 편양파(鞭羊派)는 전국적 범위에서 세력을 형성하였다. 편양파 주류는 18세기에 북방에서 남방으로 진출하였고 특히 호남에 대거 포진하였는데 편양파와 소요파(逍遙派)가 공조하여 세운 대둔사(大芚寺) 전통은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의발 전수와 ‘서산유의(西山遺意)’를 내세운 표충사(表忠祠) 건립과 ‘종원(宗院)’ 표명, 12대 종사(宗師) 체계의 성립으로 귀결되었다. 송광사(松廣寺)를 본산으로 호남 일대에서 활동한 부휴계는 지눌(知訥)의 ‘보조유풍(普照遺風)’ 선양을 표방하는 등 계파적 자의식과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한편 법통설은 1612년 허균(許筠)의 고려나옹(高麗懶翁)법통설이 처음 제기된 이래 1625년 이후 편양 언기(鞭羊彦機)에 의해 임제태고(臨濟太古)법통설이 공론화되었다. 이는 고려의 선종 전통을 배제하고 태고 보우(太古普愚)가 전수한 중국 임제종 법맥을 정통으로 인정한 것으로 정통과 명분이 강조된 시대상황에서 배태되었다. 단절된 법맥을 연결시켜 조선선종의 정통성을 천명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교단은 이를 통해 정체성을 공유하게 되었다.

3부  불교의 사상적 지향과 교학 전통 :
  선종 중심의 기존 통설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조선후기에는 ‘간화선(看話禪) 우위의 선교겸수(禪敎兼修)’가 지향되었고 17세기 전반 승려 이력과정(履歷課程)의 성립으로 화엄을 정점으로 한 교학과 간화선 수행방식이 병행하였다. 또 선과 교에 염불(念佛) 수행을 종합한 삼문수업(三門修業) 체계도 정비되었는데 이는 ‘전수(專修)’를 통한 겸수의 성격을 갖는다. 강학 성행과 사기(私記) 저술의 활성화로 인해 강학 및 교법 전수가 전법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18세기의 화엄교학 중시와 성행은 17세기 말 징관(澄觀)의 󰡔화엄소초(華嚴疏抄)󰡕 등이 새로 대대적으로 간행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화엄 원교(圓敎)는 선과 대등한 지위를 갖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화엄과 교학 전통은 선의 임제법통과 병치되는 위상을 확보하였다. 백파 긍선(白坡亘璇)의 삼종선(三種禪) 구분과 초의 의순(草衣意恂)의 비판에서 촉발된 19세기 선(禪) 논쟁 또한 단순한 선종 판석의 문제가 아니었고 선과 교의 위상 정립에 관한 논의였다. 즉 선종우위론과 선교일치론의 대립으로서 임제법통과 화엄교학의 이중적 전통에 대한 상반된 입장의 표명이었다. 

4부  조선시대 불교의 시대성 추구 :
  유불 관계와 불교의 시대적 변용을 다루었다. 배불론은 사회경제적 폐단에 대한 현실적 비판과 함께 내세관, 윤리, 인식론 등 성리학과 불교의 근본적 차이에 주목한 ‘벽이론(闢異論)’으로 전개되었다. 호불론은 불교의 기능과 가치를 주장한 공효론과 心을 매개로 한 유불조화론으로 나타났다. ‘성즉리(性卽理)’에 기반한 성리학 측의 비판에 대해 조선후기 불교는 일심(一心)과 천리(天理)의 접목을 통해 심성(心性)을 이해하였다. 18세기 불교 심성 논쟁은 ‘심즉리(心卽理)’의 구도 하에서 일원적 절대성과 다원적 상대성을 논의한 것이었다. 불교는 충효 등의 윤리적 실천, 도의와 명분의 강조 등을 통해 시대와의 접목을 시도하였고 불교 상례(喪禮)에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오복제(五服制)를 수용하였다. 법통설이나 이력과정도 유학의 도통론(道統論), 교육과정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며 법통설에 근거한 계보도와 승전(僧傳), 사서(史書)와 사지(寺誌) 등의 편찬을 통해 불교전통이 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