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이미지

ㆍ분 야

: 문학

ㆍ저자

: 오주석

ㆍ발행일

: 2018년 4월 16일

ㆍ크기

: 175 * 215 mm

ㆍ정가

: 20,000원

ㆍ쪽수

: 272

ㆍISBN

: 978-89-7668-235-2

차례
차 례

책을 펴내며 5

1 호방한 선線 속의 선禪
김명국의 <달마상> 11
- 옛 그림의 색채 26


2 잔잔하게 번지는 삼매경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33


3 꿈길을 따라서
안견의 <몽유도원도> 53
- 옛 그림의 원근법 79


4 미완의 비장미
윤두서의 <자화상> 85


5 음악과 문학의 만남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109
- 옛 그림의 여백 132


6 군자의 큰 기쁨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139


7 추운 시절의 그림
김정희의 <세한도> 153
- 옛 그림 읽기 175


8 누가 누가 이기나
김시의 <동자견려도> 181


9 들썩거리는 서민의 신명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199
- 옛 그림 보는 법 216


10 올곧은 선비의 자화상
이인상의 <설송도> 223


11 노시인의 초상화
정선의 <인왕제색도> 241
- 옛 그림에 깃든 마음 265
설명
■ 출판사 서평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과 사고의 틀을 제시한 친절하고 깊이 있는 문화재 안내서입니다. 훌륭한 예술품에는 반드시 그것을 만든 사람의 훌륭한 정신이 깃들어 있고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술품을 통하여 사람과 시대의 정신을 만납니다. 예술과 정신과 삶이 하나인 예술품만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며 마력처럼 그 세계 안으로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추체험追體驗이라 부릅니다. 오주석 선생은 조선시대의 그림들을 격조 높게 풀어나가면서 어떻게 할지 머뭇거리는 우리를 그러한 영원의 세계 안으로 인도합니다.


■ 저자소개 

오주석(吳柱錫)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그리고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역사문화연구소연구위원,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쳤던 그는, 2005년 2월 백혈병으로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단원 김홍도』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 『그림 속에 노닐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우리 문화의 황금기-진경시대』(공저) 등이 있다.


■ 책속에서

그린 이와 그려진 이가 하나
눈처럼 흰 화선지가 펼쳐져 있다. 옆에는 검은 먹물이 담긴 벼루와 그 농담을 조절하기 위한 빈 접시 하나, 그리고 붓 한 자루가 있다. 화가는 한참 동안을 텅 빈 화면 속에서 무엇을 찾는 것처럼 가만히 쏘아 보고만 있다. 이윽고 붓대를 나꿔채어 하얀 종이 한복판에 옅은 선을 빠르게 그어 나간다. 억센 매부리코에 부리부리 한 눈, 풍성한 눈썹과 콧수염, 한 일 자로 꽉 다문 입, 턱선을 따라 억세게 뻗쳐나간 구레나룻을 거침없이 그어댄다. 구레나룻 선을 쳐나갈 때는 마치 한창 달아오른 장단에 신神이 들린 고수鼓手처럼, 연속적으로 퉁기듯이 반복하면서 묵선을 점점 더 길게, 점점 더 여리게 조절하여 붓에 운율을 실어 풀어놓았다. 끝으로 이마와 뺨의 윤곽선을 긋고 나자 미묘한 표정의 달마가 확실하게 떠올랐다.
아마 붓을 종이에 대기 시작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예리한 붓끝으로 빠르게, 그러나 약간은 조심스럽게 몇 줄의 먹선을 그은 게 다지만, 이로써 달마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얼굴에 만족한 화가는 이제 좀 더 호기롭게 가사袈裟로 갖춰진 몸 부분을 그리기 시작한다. 진한 먹물을 붓에 듬뿍 먹여 더 굵고 더 빠른 선으로 호방하게 쳐나갔다. 꾹 눌러 홱 잡아채는가 하더니 그대로 날렵하게 삐쳐내고, 느닷없이 벼락같이 꺾어내서는 이리 찍고 저리 뽑아낸다. 열 번 남짓 질풍처럼 여기저기 붓대를 휘갈기고 나니 달마의 몸이 화면 위로 솟아올랐다. 달마는 두 손을 마주 잡고 가슴 앞에 모았다. 윗몸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세는 분명 앞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고 있었다. 다시 화면을 지그시 바라본다. 구레나룻 오른편 끝이 두포頭布의 굵은 획과 마주친 지점에 먹물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슬쩍 붓을 대어 위로 스쳐준다. 훨씬 좋아졌다. 다시 구레나룻 아래 목부분에 날카로운 붓을 세워 가는 주름을 세 줄 그려 넣었다. 이제 달마의 얼굴과 몸은 하나가 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끝으로 달마의 얼굴 앞쪽 화면 가장자리에 기대어 ‘연담蓮潭’이라는 자신의 호號를 휘갈긴다. 글씨 획은 그림의 선과 완전히 꼭 같은 성질의 선이다. 빠르고 거침없는 그 획들은 그려진 달마와 그린 사람이 하나임을 말해준다. 인장印章을 찾아 누른다. 화가의 호와 이름이 선홍색 인주 빛깔에 선명하다. ‘연담蓮潭’ ‘김명국인金明國印’ …….


■ 머리말

옛 글에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하였다. 옛 그림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체다. 그것은 학문의 대상이기 전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는 예술품이다. 옛 그림은 학문적으로 대할 때에는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할 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기름지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생명의 의미를 고양시킨다.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잠자는 아기의 고운 얼굴이나 새순이 움트는 나뭇가지, 좋아하는 벗의 모습이나 망망한 바다의 아득한 수평선을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다. 그렇게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거나 찬찬히 들여다볼 때 우리 내면에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대상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관심, 사랑이 자란다. 혹은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에 차 있음을 느낀다. 음악을 정말 잘 듣는 사람들은 듣는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작은 시냇물이 여울지는 소리나 이른 아침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또는 잠자리에서 듣는 빗방울 소리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있을까? 그림을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다. 길가의 나무들을 보라. 언뜻 보기에는 모두 같은 듯하지만 하나도 서로 같은 모습이 없다. 거리의 사람들 얼굴을 보라. 어쩌면 그렇게 제각기 다르고 소중한 한 생명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러므로 마음이 순수하고 여유로울 때 세상은 있는 그 자리에서 기적이다. 우리 옛 그림도 그러하다. 옛 그림을 한 점 두 점, 한 획 두 획 그린이의 손길을 따라 보노라면 거기에 담긴 조상들의 마음결도 한 자락, 두 자락 드러난다. 비록 세월의 때를 타서 좀 어두워졌거나 일부 상했을지라도 그 속에 담긴 정다움과 반듯함, 그리고 의젓한 심지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요즘처럼 외양이 화려한 시대에 어쩌면 우리 옛 그림은 패랭이꽃이나 송사리처럼 수수하고 자그마한 존재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현란한 카네이션과 열대어에서 찾을 수 없는 조촐함과 진솔함, 그리고 따사로움이 있다. 좋은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쁘게 서두르다 보면 참맛을 놓치게 된다. 찬찬히 요모조모를 살펴보고 작품을 통하여 그린 이의 손동작을 느끼며 나아가서 그 마음자리까지 더듬어 가늠해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정녕 시간을 넘어선 또 다른 예술 공간 속에서 문득 그린 이와 하나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바깥의 무엇엔가 깊이 몰두하고 있다는 것은 유한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하나의 축복이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산수화를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자연을 찾고, 꽃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삶 속에서도 꽃을 키우며, 인물화를 진정 즐기는 사람은 삶 가운데서도 사람들을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것도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생태까지도 마음 깊이 이해하는 참 사랑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주석